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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평생을 함께한다고 하여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만큼 여성에게 흔하고 여성을 따다라니는 그이름 그 제품


바로 스타킹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은 스타킹의 역사스토리 시간을 가져봐요



[스타킹의 역사]


스타킹(stocking)의 착용은 본래 다리의 보온의 목적인 위생적 기능에서 출발하였지만, 현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감에 

따라 의복착용시 필수품으로써 성능이 더 중요시 되고 있으며, 그 착용률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타킹에 대한 소비자 의식 역시 1회용 소모품에서 액세서리의 개념으로서의 자기표현을 위한 패션상품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 문양을 가진 패션성이 강한 스타킹이 등장하고 있으며, 소재면에서도 위생적인 성능과 함께 내구성, 

신축성, 착용감 등에 있어서 고품질특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스타킹의 점차적 수요증가와 그에 따른 고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스타킹에 대한 연구가 

더욱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스타킹의 유래] 


양말에는 여러 가지 명칭이 있는데, 각종 양말류를 지칭하는 호우저리(hosiery)와 긴 양말(stocking)과 짧은 양말(socks)을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우즈(hose)가 있다. 그 중 스타킹은 발과 다리부분에 꼭 맞게 착용하는 목이 긴 양말로서 삭스(socks)와는 

다르게 보통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긴 양말을 말합니다.


스타킹의 원형은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남자복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란 하의인 호우즈로 14세기 경부터 점차 

위로 올라가 양말 겸 바지로 하반신에 착용하게 되었으며, 15세기에는 허리까지 이르는 길이가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윗부분이 넓어지면서 트렁크 호즈(trunk hose)가 나타났고 이에 따라 아랫부분은 따로 분리되어

스타킹 오브 호우즈(stocking of hose)라고 부르게 되었다.


편물 스타킹은 1589년 영국 목사인 윌리암(L.Willam)이 양말짜는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어 상류층 여성사이에서 

널리 애용되었으며, 17세기 말 비단대신 면사와 모사로 짠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그 후 2차대전 무렵 화학섬유의 출현으로 이전의 비단제품이 나일론제품으로 대체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스타킹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57년 봉조스타킹이란 명칭으로 주식회사 남영나일론에 의해서였다. 

그 후 1965년 유영산업(반달표 스타킹), 화창산업(화창레스)에서 도입, 국내 스타킹 산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생산초기에는 고가정책으로 판매가 이루어졌으나, 1968년 미니선풍과 경제 수준 향상으로 수요가 급증하게 되면서 

각 회사마다 증설을 서둘렀으며, 이때부터 스타킹의 대중화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스타킹은 여성보다는 사실 먼저 남자가 착용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소 우스꽝스런 이야기 이기도 하네요.



[스타킹의 형태구분]


1.풀 패션 스타킹(full fashioned stocking):발 모양에 맞춰서 짠 것을 뒷솔기에서 꿰맨 것이다.

 

2.심리스 스타킹(seamless stocking):통모양으로 둥글게 짠 후 열처리로 발 모양을 세트하였고, 솔기가 없다.

 

3.트리코 스타킹(tricot stocking):트리코 직물로 재단 ·봉제한, 다소 두껍고 올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다.




[스타킹에 대해 가장많이 궁금해 하는 것들중]


비싼 스타킹일수록 줄이잘 나가지 않는다?


=>값비싼 스타킹을 사는 소비자 중에는오래 신을 수 있으니 오히려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비싼 스타킹의 요소는 기능성·신축성·촉감·장식성(패턴)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촉감은 부드럽고 재질이 얇을수록 고급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제품에는 가느다란 미세사를 사용한다.

미세사를 사용한 스타킹은 실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이 올라가지만 실의 특성상 보푸라기가 잘 일어나고 쉽게 줄이 간다. 


미세사는 촉감이 부드럽고 투명한 색상을 내는 반면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비싼 스타킹이라고 해서 줄이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가지 않는 제품은 바로 데니어가 높은 스타킹인데 데니어가 높은 제품은 두껍고 불투명하다.



[스타킹의 간단한 세탁법]


다른 옷과 같이 빨면 스타킹에서 물이 빠져 옷에 물이 들 수 있으므로 단독 세탁한다.


되도록 손빨래하고 세탁기로 빨 경우에는 세탁망에 넣어주어야 늘어나지 않고 스타킹이 상하지 않는다. 


타이즈는 보푸라기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손빨래한다.

 

물에 담가 두었다가 중성세제를 사용, 가볍게 주물러 빤다.



여기 까지 현대인여성의 필수품 스타킹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았는데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hstar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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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지가지 생활속의 팁!


옛것이지만 현대에도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전통그릇 방짜유기에 대해 알아봅시다.


저희집에도 있는 그릇인 유래와 역사가 오래된 '방짜유기' 에 대해서 글을 좀 적어보려합니다.

방자유기 라고도 하고요 흔히 표현하기 쉽게는 놋그릇 이라고도 많이 부르기도 합니다


[방짜유기란]

유기의 종류중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가며 두드려서 만든 그릇 을 방짜유기라고 합니다.


방짜유기는 음식을 담는 식기류에 주로 쓰입니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액을 불에 달구어 망치로 여러 차례 두들겨서 만드는 제작과정이 있습니다. 

이때 주석의 비율이 일반 청동 그릇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합니다.



[방짜유기의 역사]

대한민국의 청동기 문화는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스키타이’청동기 문화와 관련이 있는 북방계의 ‘오르도스-요령지방’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비파형동검과 조문경을 제작하였고, 후기가 되면 세형청동검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다뉴세문경,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의 도구를 제작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방자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귀족 왕족들의 전유물 이기도 하였다는 내용의 설이 있네요 ?

생긴 투박함과는 달리. 지금시대로 따지면 있는집안의 명품그릇 격이 었군요.


방짜유기를 제작하는 곳에서는 간단한 식기뿐아니라 그릇뚜껑 수저 젓가락

주전자도 제작을 한다고 하네요.가능한 모든 형태의 식기와 주방에 필요한 용품을 제작 가능

한것으로 보입니다. 



'방짜유기'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조금만더 살펴보자면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서 채굴에 힘을 썼으며, 경국대전에 의하면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鍮匠)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으로 공조(工曹)에 8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을 두었고, 지방 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外工匠)도 상당수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라고 하는데 '방짜유기'를 따로 만드는 관리인과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상당히 전문성있고

약간은 놀랍기도한 내용입니다. 아마 왕족귀족이 주로 쓰는 그릇이었기 때문일까요??

.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불교적 색채를 띠는 금공품이 많지 않았던 반면 담배함, 화로, 향로, 반상기 등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형태의 생활용품과 민예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자기를 대중적인 식기로 쓰던 시대였음에도 유기는 고려시대에 이어 상류층에서 식기로 사용하였으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생활 용구로 사용되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시장을 형성하였다.

역시 여기에도 주로 경제적인 수준이 높은편의 사람들이상이 주로 사용하였다는 내용을 또 다시 확인해 볼 수 가 있네요 ^^


근대 말에는 일본에 의한 유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서 소유한 거의 모든 유기들을 수탈당하였다. 그 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유기는 다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놋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선호하여 유기는 점차 사라졌다.

하하 ... 그릇조차도 일본의 영향을 받고 점차 없어지기 시작하였다니. 

조금은 화도 나는 부분이 아닐수 없군요 ... 우리나라의 보물들 또한 일제가 수탈하여 현재에도

일본에 있는 물건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자주 뉴스에도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죠 속상하네요.


[방짜유기의 실용성과 효능]

최근 각종 실험을 통해 병원균, O-157 살균기능, 농약성분 검출기능 등이 밝혀지면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열보존률은 사기그릇, 스테인리스, 방짜유기 중 방짜유기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살균기능과 더불어 열보존률이 그릇중 가장 뛰어나. 맛있는 밥과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는 훌륭한 그릇이라는 결론입니다.



[방짜유기의 제작과정]

여러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조직적으로 제조해야 하므로,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고도의 숙련 기술이 요구된다. 경기도 안성시가 전통적으로 유기 제조로 유명했다.'안성맞춤'이라는 표현도 안성의 유기에서 나온 것이다.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안성맞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의 유래가 방짜유기 제작에서 비롯된것이라니요.


방짜유기는 주물 유기와는 달리 정확히 합금된 놋쇠를 불에 달구어 메질(망치질)을 되풀이 해서 얇게 늘여가며 형태를 잡아가는 기법이다.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방짜 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비교적 변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쓸수록 윤기가 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방짜는 독성이 없으므로 식기류를 가장 많이 생산해낸다고 합니다.


1945년 경 안성 일대에만 공방이 20여 개 있었을 정도로 성황이었으나, 연탄이 보급되면서 변색이 잘 되고 닦기도 번거로운 유기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기 제조 기술 보유자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공예문화 보존을 노력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에도 지정된 '방짜유기' 입니다.



[방짜유기는 몸에 해롭지는 않은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방짜유기그릇의 얼룩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유기그릇에 음식이나 유해물질이 닿으면  반응을 한답니다.

음식에 농약성분이나 납성분이 있는경우 그릇이 변색이 되어

음식이 해롭다는것을 알려줄뿐.. 몸에 해롭지는 않습니다 (마치 은수저,은젓가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군요.)

 얼룩은 간단히 유기그릇 닦는방법을 이용하여 닦아주시면

말끔히 사라지기 때문에 이용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방짜유기의 관리]


방짜유기의 관리는 생각보다 너무 의외로 간단한 편입니다.

먼지 유기와 초록색 마른 수세미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장갑을 끼시고 마른초록색수세미로 그릇의 결을 따라 약간의 힘을주어 닦아내시면 됩니다.

글면 약간의 검은가루가 묻어나오게 되는데 유기그릇의 주성분 주석가루이고 몸에 유해되는성분이 아니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후 2차로 주방세제를 묻혀서 한번더 닦아주시면 사용하면서 생겼던 얼룩이나 잔때가 벗겨져

다시 새것처럼 됩니다.



그外에 방짜유기에 대한 몇가지 더!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자(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 등이 있다.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먼저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도가니에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들어 제작과정을 거친다.


유기제품에 관하여....

일단 유기제품은 공장에서 기계식으로 생산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제품이 일정하지 않고 흠이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제품의 한계이자 매력으로 보셔야 합니다.


놋제품은 구리와 주석과 은이 들어갑니다. 이 원료를 순도가 높은 정량의 원료를 사용합니다. 공기중의 산소랑 결합하여 산화될 경우 구리아 주석이 있어 푸른 녹이 있을 수 있으나 세척하면 되고 유기제품의 놋과 주석은 실제 음식의 독을 제거하고 미량의 경우 흡수되어도 해독과 소화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는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유기제품은 은으로 인해 흰색을 띄는 은은한 황색이 고유색입니다. 유기는 막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속이라 산화막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세미와 세제로 거칠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천년을 가는 금속이라 세게 다르시는 것이 더 명품의 멋을 내는 비결입니다.

광택제는 1년에 한번 정도 사용하시면 됩니다.


보관시에는 물기와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시고 유해 가스등에 접촉하지 않게 하십시요.


유기는 우리 조상의 지혜로 이어온 우리 고유의 식기 문화입니다. 더운 음식은 더욱 덥게, 추운 음식은 더욱 춥게 하는 마법의 식기이자 독을 예방하고 해독하는 기능을 가진 멋과 맛을 함께 제공하는 유기 놋그릇을 잘 알고 사랑해 주세요.


옛것이나 과학(?) 이 깃든. 기능과 살균등 효과가 뛰어난 신기한 방짜유기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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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래 역사 스토리 코너입니다.


전국민이 사랑한 아니 전세계인이 사랑하고 즐기는 음료 콜라의 왕 코카콜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코 카 콜 라]


일단 코카콜라의 첫 시작은 다소 황당한 생각이 들정도 이기도 합니다.

콜라는 1886년에 약국을 운영하던 존 팸버튼 이라는 박사가 소다에 갖가지 약재를 섞어서 소화제 대신 판매한것에서 유래합니다.

엄청 웃기죠? 음료수나 술상에서나 보는 콜라가 원래는 소화제 였다니 말이에요.


제조 비법은 코카라는  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코카인을 추출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코카인이 중독성이 있어서 쓸 수 없으므로

콜라의99.5%는 설탕과 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것은 너무 미미해 밝힐 가치가 없다며 안밝혔다고 합니다. 막상 알고보면 너무

아무것도 아닌것(?) 이려나 봐요.


코카콜라 회사의 정보.


국가 : 미국

업종 : 청량음료 제조

설립자 : J.S. 팸버턴

설립일 : 1886년

본사 : 조지아주 애틀랜타

한국지사 :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


코카콜라의 유래와 역사 



1886년 애틀랜타의 약제사인 J.S. 펨버턴(1831~1888)이 코카의 잎, 콜라의 열매, 카페인 등을 주원료로 하는 음료를 만들어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였다. 후에 동시의 약제사인 캔들러가 제조 ·판매권을 매입하여 1919년 현재의 회사조직을 설립하고 

청량음료로서 판매를 개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방성의 후원으로 매출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고합니다. 

현재는 코카콜라 외에 환타·스프라이트·터부 등의 청량음료·과즙음료를 제조하여 세계 각국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최대의 셰어(Share)를 자랑하며 국외에서도 아메리카니즘의 대명사로 쓰일 만큼 보급되어 있다.


코카콜라는 본사에서 원액(제법 미공개)만을 제조하여 국내 및 해외의 특정회사에게만 공급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채용하고있습니다.

특정회사에서는 원액에 물·탄산·설탕 등의 첨가물을 배합하여 병 또는 캔에 넣고 루트 세일즈(직매) 방식에 의하여 판매한다.


국외의 회사에 대해서는 자본·종업원 등에 관하여 철저한 현지주의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1968년 두산그룹 산하의 두산음료(주)를 시작으로 우성식품(주)·범양식품(주)·호남식품(주) 등이 

지역별로 코카콜라 제조회사를 운영하였으나, 1997년 현지법인인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을 설립하여 직영체제로 전환하였다.


라고 하네요. 


그리고 콜라에 대해 알아보면서 정말 의외였고 놀랐던 점은. 코카콜라원액은 황산과 같은 산성도로 위험한 화학물질 이라고합니다.

살짝 겁이 나기도 하는 이야기네요.


#코카콜라 브랜드. 상표에 관한 이야기 스토리.


콜라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색은 누가 뭐라 해도 빨간색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코카콜라의 상징이 되어 온 빨간색이 처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고합니다. 

처음 코카콜라가 개발되었던 1886년부터 1890년까지는 흑백으로 광고문구를 사용했다가, 1890년 후반부에 이르러서 빨간색으로 

로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1차 세계 대전 이후, 코카콜라의 빨간색이 정형화되었고, 이후 50년간 변함없이 사용되어 오다가 1970년 다이나믹 컨투어 

로고 디자인이 소개되면서 좀더 밝은 빨간색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광고에 빨간색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틀랜타에 위치한 코카콜라를 판매하던 약국의 외벽에 흰 천 바탕에 

빨간 글씨로 옥외 광고를 시작했을 때부터 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광고 문구는 맛있고 상쾌한 코카콜라! 맛있는 코카콜라가 5센트! 였다고 합니다 정말 웃기네요. 


현재 쓰이는 정형화된 빨간색 바탕에 흰 글씨의 코카콜라 로고는 1920년대와 193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수년간 코카콜라 로고는 흰 바탕에 빨간 글씨 또는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번갈아 가며 사용하다가, 

1965년 코카콜라사가 실시한 조사 결과, 코카콜라의 트레이드마크를 가장 강력하게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빨간색 바탕에 흰색의 로고이면서

또한 코카콜라의 트레이드마크와 가장 강력하게 시각적으로 연상이 되는 것은 빨간 원판임이 알려져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콜라를 개발한 사람은 정말로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아 부럽네요.

그리고 콜라 라고 하면 빨간색 코카콜라상표를 모두가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 아닐까요?


우린 항상 기름진 음식을 먹을때 고민합니다. 콜라먹을까 사이다 먹을까?


저의 선택은 코카콜라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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