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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사랑하는 간식 햄버거와 동급으로 오늘날 많은 음식점과 커피숍에도 판매되고 있는 식사로도 손색없는 그이름


양쪽의 두개의 빵안에 햄,베이컨,고기,계란,야채 등을 취향에 맞게 넣어서 먹는 이 음식을 우리는 샌드위치라고 부릅니다.


샌드위치는 누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일까?


사실은 샌드위치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냈답니다. 예 재미있게도 샌드위치라는 이름자체가 샌드위치를 만든 사람의 이름인 것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샌드위치 백작과 샌드위치의 탄생]


이 간편식은 프랑스 샌드위치 백작의 작품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내놓으라하는 귀족들이 모여 살던 파리의 중심가.

백작하면 으레 지와 덕을 겸비한데다가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자를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샌드위치의 백작의 경우는 좀많이 달랐다고합니다.

재산은 많고 넘치는데 그토록 돈쓸데가 없어 도박에 푹 빠져 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재미로 시작했으나 점차 심해져 하루일과가 아예 도박판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끝나고, 

세월이 흐를 수록 그 정도는 더해만 갔다고 합니다.

잠을 설치는 것을 물론 식사까지 예사로 거르며 도박에만 매달리기 일쑤이다보니 자연히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약해져만갔습니다.

도박을 하면서 짧은 시간내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을까.


자꾸만 식욕을 잃어가던 백작은 마침내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기 이른것입니다.

하인을 시켜 파리 시내를 샅샅이 뒤졌으나 마음에 쏙 드는 음식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백작 자신도 답답했지만 하인들의 걱정 또한 태산같을수밖에요 극한직업이 따로 없었군요.


백작이 잘못되면 그들 역시 상전을 잘못 모신 죄로 화를 면키 어렵기 때문이었다. 옛날 우리나라와 서양도 똑같네요.

아무리 식사를 권해도 거들떠 보지않는 백작때문에 애를 태우던 하인들은 궁여책으로 

빵과 고기 그리고 채소를 되는대로 으깨 버무려 밤알만하게 뭉쳐 노름에 미쳐있는 백작의 손에 쥐어주고맙니다.

무심코 받아들고 한입삼킨 백작은 의외로 그 음식을 좋아하게됩니다.


하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샌드위치 백작의 머리속은 빵과 빵사이에 고기와 채소를넣어 익히는게 어떨까 생각을합니다.

하인들을 시켜 만든 새로운 식품은 노름방에 모인 사람들을 감탄시켰습니다.

번거롭지 않는데다 맛도 기가 막히고 걸리는 것 없이 잘 넘어가니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었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은 '고기와 채소를 넣은 식빵'이라는 명칭으로 특허출원을 마치고 하인들에게 대량생산을 지시했다네요

폭발적인 인기였다.

순식간에 파리를 강타하고 이내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갔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복잡한 명칭 대신 발명가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샌드위치의 인기와 더불어 샌드위치 백작의 주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백작은 이를 계기로 노름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성실한 관리로 다시 돌아갔다.


번외편으로

샌드위치 백작은 영국의 해군성 초대 장관이 되어 탐험가 제임스 쿡의 항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쿡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태평양 폴리네시아의 한 군도를 샌드위치 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곳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50번째 주에 해당되는 하와이입니다


라는 이야기 네요. 식사와 건강은 물론 도박까지 그만두게 만들어준 샌드위치는 정말 샌드위치백작의 신의한 수 가 아니였나싶은데요 내인생에도 샌드위치같은 신의 한수가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Posted by hstar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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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보글보글 맛좋은 라면 후르르쩝쩝 후르르쩝쩝 맛좋은라면


오늘은 라면의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봐요 




라면은 최초 중국이 원조라는 설도 있으나 지금과 같은 라면의 형태는 일본에서 처음생산 된게맞다.

1958년 안도모모후꾸 라는 일본인이 술집에서 튀김요리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던중에 라면제조법을 

생각해낸것이 최초라고 한다.


당시 라면은 시일이 경과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때문에 1961년 명성식품이란 곳에서 현재와 같은 스프를 분말로 만들어 

끓여먹는 형태의 라면을 생산하게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하며 라면이라는 말도 일본어의 라멘 에서 따온것입니다.


1950년대의 일본은 제2차 대전 패배의 후유증으로 인해 건국 이후 최대의 고난기를 겪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여 미국에서 밀가루를 지원 받아 빵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안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쌀밥을 주식으로 하던 식습관 탓에 빵만으로는 공복감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술집을 간 안도는 덴뿌라를 기름에 튀기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게 된다. 바로 집으로 돌아온 안도는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튀겨 보았고, 이후 몇 차례 실험 끝에 결국 라면 개발에 

성공하였다. 안도가 만들어 낸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아지츠케면은 국숫발에 양념을 묻힌 것으로 끓는 물에 2분만 넣고 끓이면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1963년 삼양라면이 일본의 라면 제조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치킨탕면)을 선보이면서 라면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당시 일반인들에게 라면은 생소할 뿐이어서 초기 반응이 시큰둥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소비 권장정책에 힘입어 라면이 대중화됐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우리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식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라면 1인당소비량은 단언코 1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라면을 소비하는 나라는 단연 중국으로 연간 408억 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그에 이어 인도네시아 139억 개, 일본 53억 개, 베트남 43억 개, 미국 40억 개이고 그를 이어 우리나라가 34억 개로 6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1인당 소비량에서는 수십 년간 한국이 독보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소비량 69개 전체 소비량으로 세계 1위인 중국의 1인당 소비량은 32개로 반절에 못 미친다



[라면을 개발한 '안도 모모후꾸'에 대하여 조금더......]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가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있을 수 없을법 한 놀라운 사실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의 경영 철학은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

세상을 위해 먹을것을 만든다. 는 그의 신념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구절입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등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등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행보를 걸어왔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91세가 되던 2001년에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 라면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실제로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으로 라면을 먹는 중계 장면을 보고 

안도가 감개무량해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오랫동안 상하지 않으면서 싸게 팔리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들어 인류가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고 싶다.

는 그의 철학은 현실이 되었다. 

언론은 그를 “미스터 누들”이라 부르며 세계 평화에 기여한 안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 마땅하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채 그는 2007년 1월 5일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해서 그런가 96세의 나이까지 장수 하셨군요 ^^ 

허나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것은 꾀나 아쉽네요 ... 서양권에서는 동양만큼은 라면을 많이 먹지 않아서 그런것일까하는

혼자만의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부턴 매일 라면을 먹을때마다 개발자 안도씨가 생각날 것만 같습니다.


한개발자의 마음이 들어가 있기도 한 라면스토리 맛있고도 소중한 라면 이야기 였습니다.


Posted by hstar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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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내가요리사 짜라짜라짜라 짜장미엔 짜장면 . 안녕하세요 오늘은 짜장면 에 대하여 알아보겠네요



짜장면 하면 항상 나오는 토론주제가 있습니다. 짜장면은 우리나라것이냐 중국음식이냐 하는 바로 그것인데요.


그리하여 그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겟다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짜장면이 한국에서 나온 만든 요리라고요? 중국을다니면서 숱한 짜장면을 먹어보신 분에 의하면 짜장면은 한국에서 


발명된 요리가 아니라 발전된 요리라는 건 확실하답니다.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습니다. ' 炸?面 (zhajiangmian) '  


우리나라 한자발음으로는 '작장면'이지만 중국발음으로는 '짜/쟝!미엔!' 정도 발음이 됩니다.  성조 빼고 빠르게 발음한다면


'짜쟝멘' 정도 됩니다. 비슷하지요!?  


우리나라에서 발명한 요리인지 중국 짜장면에서 진화한건지 알아보기전에 화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교는 중국국적  화인은 해당국국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화교(화인)는 중화민국(대만)과도 연관되서 좀더 복잡합니다.


화교의 역사는 아주 길지만  우리가 아는 화교는 보통 아편전쟁이후 서구지역으로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으로 끌려갔다고 할까요 


팔려갔다고 할까요. 우리나라 개항초기에 들어온 화교역시. 중국에서도 해외에 나갈수밖에없을 정도로 저소득층였던 대부분의 화교들은 꾸리


(고력 苦力 Coolie)라고 불리는 막노동자였고 개중 머리가 있으면 소규모잡상인으로  손재주가 있으면 세가지 칼로 삽니다.  


세가지 칼은 바로


가위는 재단사 면도칼은 이발사 부엌칼은 당연 요리사입니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역사는 우리나라 화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화교의 첫번째 물결이 개항이후였다면  


두번째 물결은 1949년 제 2차 국공내전시 공산당의 승리때문였습니다. 제 2차 국공내전은 중국이 일본에 승리한 그러니까 일본이 항복한 


1945년 이후 공산당(당시 중공 현 중국)과 국민당(당시 중(화민)국 현 대만)간의 내전을 말합니다.


당연히 근거지를 잃고 위기감을 느낀 산동쪽 국민당계열들은 가까운 한국으로 피난을나오게 됩니다.  


우리나라 화교분들은 주로 교동(산동 교주 동쪽)출신인 이유는 우리나라랑 가까운 지리적이유가 제일 큽니다. 


제 어렸을때 제 고향 군산에  중국음식점이 많았는데  거진 산동출신들이셨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6.25 와  


박정희정권때 화교부동산 및 동산매매제한등 차별조치등으로 많이 떠나게 되고 그 빈 주방을 한국인제자나 조수들이 메우게 됩니다.


 '왜 이렇게 짜장면얘기랑 상관없는 얘기가 긴가?'하고 생각하시는 건 당연합니다. 이제 본론입니다. 


짜장면은 바로 산동주방장들이 만든 산동요리 그러니까  중국 8대요리중 하나인 로채(?菜)에 속합니다.  


중국4대요리는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북경, 상해, 광동, 사천요리를 말하지요. 


8대요리로는 산동(?菜) 사천(川菜) 강소(?菜) 절강(浙菜) 안휘(徽菜) 광동(?菜) 복건(?菜) 호남(湘菜) 요리입니다.   


 자! 4대요리에서 8대요리로 늘어나니까 북경요리가 사라졌지요?  북경요리는 원래 산동요리에 속합니다. 


산동요리(?菜)는 넓게 지역적으로 산동 북경 동북을 아우르는 요리이기도 합니다.


북경요리중에서 제일 유명한 간판요리는 뭘까요?  북경오리구이 그리고 북경짜장면입니다. 


중국에서는 면은 요리로 안넣어줍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로 취급하니까 넣도록 하겠습니다.


짜장면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춘장입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춘장이 없습니다.  


한국짜장면과 중국짜장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첨면장(?面?)이라는 밀된장을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첨면장에 


카라멜을 섞은 춘장을 씁니다. 발효된장맛이라 우리나라사람 입에 당연 잘 맞고요 역시 첨면장으로 만든 중국볶음요리몇몇은 


짜장맛과 흡사한 맛이 납니다. 


한국과 중국 짜장의 차별화는 사실 1948년 화교이셨던 왕송산씨가 춘장을 발명하고나서 입니다.  


그전까지는 중국에서 먹던 짜장면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짜장면을 인천 공화춘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얘기지  


짜장면을 공화춘에서 발명한 건 아닙니다.  


저는 근거미약한 한국짜장면의 창조설을 부정하며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진화설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6.25 이후 한국에 밀가루가 들어오게 된것도 짜장의 진화에 한몫을 합니다.  


원래 첨면장은 대두였는데 밀가루를 넣기 시작하게 된거지요. 지금은 다시 대두를 많이 쓴다고 하는군요.


그다음의 차이는 뭘까요?  야채의 대량투하라고 할까요.  물론 위에 보시는 것처럼 고명으로 야채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야채를 넣고 볶는건 한국짜장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야채를 넣고 볶은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요 중국에서 양념으로 주는 볶은짜장(첨면장)은 아주 짭니다. 


지금도 역시 짭니다. 중국와서 한국처럼 짜장다넣고 비비시면 짜서 못먹을 정도니 조금씩 넣어서 간을 맞추셔야 합니다.  


야채때문에 짜장의 짠맛을 많이 중화시켜줍니다. 


아마 우리나라 음식들이 염분이 많아서 새로운 중화 짠맛에 저항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저항감을  양배추나 양파로 부드럽게 완화시킨 것 같습니다.


 


결론은 한국짜장면은


중국짜장면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가 고민되는날엔 짬짜면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하하하 .


Posted by hstar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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